1월 초, 추운 겨울의 이야기
라멘이라는 음식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과 기록.
전날 불금에 술 한 잔 진득하게 마시고 토요일 아침이 밝았다. 늦잠을 자고 기분 좋게 일어나 잠자리에서 뒹굴면서 해장을 무엇으로 할지 잠깐 고민해 본다.
해장에 대한 메뉴는 늘 한정적이다. 이미 맛본 적이 있는, 만족스러운 집 중에서 해장할 곳을 찾는다. 새로운 음식점에 대한 시도는 해장이 필요 없는 일상 때 해도 충분하니 말이다.
어디로 갈지 고민을 하다 보니 오래간만에 라멘이 땡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우리 동네, 부산 원도심에는 '라멘'이라는 간판을 달고 영업하는 집은 많은데 '라멘'이라는 음식을 제대로 해석해서 파는 집이 잘 없다. 늘 아쉬운 부분이다.
대부분 한번 먹어보면 두 번 다시는 안 먹을 그런 라멘집들뿐이다. 한국식으로 바꾼답시고 '라면'도 아니고 '라멘'도 아닌 어정쩡한 포지션을 만들어 파는데 희한하게 인기는 많고 장사는 잘 되더라. 장사가 잘 돼서 체인점이니 직영점을 내는 곳들도 눈에 보이니 신기할 따름이다.
또 얘기하지만 내 입맛이 마이너 한가? 나는 그저 일본식 라멘을 제대로 즐기고 싶을 뿐인데. 각설하고 해운대로 가자니 주말 점심이라 차가 막힐 테고 전포동 라멘집을 가자니 복잡할 것 같고 대안은 한 가지뿐이다. 양산으로 출발.
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 화합4길 11-11
문의 : 055-381-4402
영업시간 : 월~금 오전 11시 30분 ~ 오후 8시, 토요일 오전 11시 30분 ~ 오후 2시
브레이크 타임 : 오후 2시 ~ 오후 5시
휴무 : 매주 일요일, 공휴일
오늘 맛있는 라멘을 맛볼 사사야키 본점이다. 최근 부산대 사사야키가 폐업하면서 이제는 어쩔 수 없이 물금 본점으로 와야 한다.
토요일 점심 프리미엄 덕분에 양산 물금 신도시 범어지구까지 오는데 1시간 정도가 걸렸다. 평소 식당에서 10분 이상 기다리는 것도 상당히 싫어하는 내 입장에서 1시간을 운전해서 밥을 먹으러 간다는 것은 참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부산역에서 무궁화호를 타고 물금역에 내려서 버스를 타거나 산책 삼아 걸어오는 것도 한 방법이 되겠다. 식사 후에도 물금역으로 걸어가서 기차를 타면 된다.
영업시간 참고
토요일은 오후 2시에 마치기 때문에 서둘러야 한다. 당시만 해도 코로나19가 아주 심각한 상황이라 방역에 관한 안내가 이곳저곳에 붙어있었다.
자가제면
면을 직접 뽑는 곳이다. 그리고 육수 역시 직접 만든다. 인터넷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기성품 면과 우유팩 돈코츠 육수, 가루 스프를 사용하는 다른 라멘집들과는 결이 다르다.
라멘이라는 음식은 확실히 취향을 많이 탄다. 오늘 소개할 집은 돈코츠 라멘집이니 그것에 한정해서 말해본다.
일본 라멘 염도 때문에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것 같다. 일본 현지의 염도를 그대로 재현한 곳은 부산에서는 아직 별로 없는 것 같다. 이 말인즉슨, 제대로 하는 라멘집에서도 우리 한국 사람 입맛에 맞춰서 염도를 어느 정도 조절을 한 상태로 판매한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일본라멘의 '짠'맛을 싫어하는 사람이 많으니 국물에 물 탄 듯 라면도 라멘도 아닌 어중간한 '간판만' 라멘 집들이 생기고 성업하게 되지 않는가 생각해 본다. 확실히 그런 집들과 제대로 하는 집들에 대한 평가는 후기만 봐도 상반된다. 개인별 입맛 차이가 꽤 크다는 점이다.
물론 일본 현지 스타일의 라멘 마니아들을 위해 라멘을 제대로 해석한 라멘 집들이 최근 부산에도 꽤 많이 생기고 있다. 돈코츠, 시오, 미소, 쇼유라멘, 츠케멘, 마제소바 등 다양한 스타일의 라멘을 맛볼 수 있는 집들이 많아지는 것은 아주 환영할 부분이다. 라멘을 제대로 드시는 몇몇 이웃분들 덕분에 좋은 곳을 소개받아 직접 가서 맛보기도 했는데 참 좋더라. 추후 하나하나 포스팅할 예정이다.
메뉴판이다. 라멘 메뉴 기준, 최근 가격이 900원 올랐다. 나는 원라멘, 함께한 이는 수라멘을 주문한다. 이 집 라멘은 아지 타마고 (맛계란)이 기본 제공되지 않기 때문에 꼭 추가로 주문하는 것을 추천한다. 참 잘 만든 맛계란이기 때문이다. 원라멘 + 맛계란 이렇게 주문하면 7,900원이다.
예전에는 점보로 업그레이드해서 먹곤 했는데 요즘은 배가 작아져서 일반 라멘을 주문한다. 혹시 모자라면 사리를 추가하면 된다.
이곳 사사야키는 한 그릇 라멘을 만들기 위해 3일 전부터 모든 재료를 직접 만들어 낸다고 한다. 다찌 자리에 앉으면 주방과 제면실이 훤히 보이는 구조라 지켜보고 있으면 이 말을 공감하게 된다. 그리고 끊임없이 더 좋은 맛을 찾아 연구한다는 것도 맞다. 이 집에 다닌 지 몇 년 됐는데 주기적으로 그 맛이 약간씩 바뀌는 경향이 있다.
잠깐 추억을 돌아보는 시간. 일본 여행을 한참 다니던 시절, 큐슈 지방에 자주 갔다. 가깝고 저렴하고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맛있는 돈코츠 라멘이 있기도 했기 때문이다. 후쿠오카 돈코츠 라멘에는 여러 가지 스타일이 있는데 대표적인 하카타식, 그리고 나가하마식이 있다.
하카타식은 후쿠오카 쿠루메 지방이 원조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후쿠오카 현지에서 맛보고 참 만족했던 쿠루메 타이호라멘이 대표적이다. 텐진과 하카타에 분점이 있어서 맛본 분들이 많을 것이다. 많이들 찾는 잇푸도라멘 본점, 이치란라멘 본점도 맛보았는데 타이호라멘을 추천한다. 물론 내 취향 기준이다.
나가하마식은 간소나가하마야라는 집이 가장 유명하다. 후쿠오카 오호리 공원에 갔다가 들렀던 곳이 있는데 그곳의 나가마하식 돈코츠도 참 맛있었는데 그 이름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손님이 아주 많았던 맛집이었다. 국물이 하카타식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나가하마식 돈코츠라멘을 전개하는 곳은 해운대 나가하마만게츠가 있다.
이미 많은 손님들이 식사를 하고 있다. 몇 분 정도 조금 기다렸다. 그리고 자리를 잡고 앉아본다.
주방 쪽 모습이다. 돈코츠라멘 만드는 공간이라고 적혀있네. 이 식당의 장점 중 하나는 접객에 활기가 넘친다는 점이다. 늘 친절하고 신난다.
노출 콘크리트로 실내마감을 해놓았고 입구에 QR 체크, 그리고 작은 계산대가 있다. 눈에 보이는 의자들은 대기석이다. 식사하는 공간과 대기 공간이 분리되어 있는 부분도 참 좋다. 대기 손님들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 편안하게 식사를 즐기면 된다.
원산지 표시판 참고
각 테이블에는 생마늘, 초생강 절임, 젓가락 등이 놓여 있다.
생수가 아닌 오차를 내어준다. 시원한 물 한 모금으로 입가심하고 라멘 맛볼 준비를 해보자.
초생강 절임을 좋아한다. 먹을 만큼만 담아본다.
단무지가 기본 반찬으로 나오는데 추가 그릇을 요청하지 않고 함께 담는다.
잠시 기다리니 함께한 이가 주문한 수라멘이 먼저 나왔다. 국물 색깔을 보면 아주 약간 초록빛을 띈다. 이것은 땡초를 아주 잘게 갈아 넣어서 매콤함을 끌어올리기 위한 비책이다. 수라멘도 상당히 맛있다. 하지만 느끼함을 좋아하는 나는 원라멘이 더 낫더라.
내가 주문한 원라멘 등장! 비주얼만 봐도 마음에 안정감이 생긴다. 1시간 운전해서 달려온 보람이 있다. 왜냐하면 이 맛을 알기 때문이다. 먹기 직전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설레고 즐거운 시간이다.
맛계란에는 사사야키 로고 불도장이 찍혀있다. 이 집 맛계란 정말 제대로이다. 맛에 대한 이야기는 잠시 후에 하기로 한다.
원라멘의 국물을 한 숟가락 떠보았다. 3년 전에 이집 포스팅을 했을 때 국물이 이랬고 작년에 포스팅했을 때는 갈색의 특제 간장 소스가 국물 위에 둥둥 떠있던 모습이 기억난다.
오늘은 특제 간장 소스가 빠지고 숙주도 빠졌다. 앞서 말한 것처럼 사사야키를 참 좋아하는 부분 중 하나가 맛에 대한 끊임없는 열정이다. 늘 연구하고 노력하는 것이 보인다. 주기적으로 맛이 조금씩 바뀌는데 늘 만족스럽고 새롭다는 점이 참 좋다.
둥둥 떠있는 기름을 보니 이 육수를 만들기 위해 돼지 사골을 정성을 들여서 우려내고 또 우려내는 인고의 과정이 짐작이 간다.
면은 카타 면으로 퍼지지 않고 적당히 꼬들꼬들하게 잘 삶아졌다. 면의 삶기 역시 조절을 할 수 있으니 꼬들꼬들한 면을 싫어한다면 퍼진 면을 요청하면 조절해 줄 것이다. 암튼 면은 완전 내 입에 잘 맞다.
차슈가 정말 맛있다. 두껍고 크고 양이 많다. 차슈 인심이 좋은 집이다. 맛을 보면 상당히 부드럽다. 씹는다는 표현보다는 입에서 살살 녹아들어 간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는 표현 같다.
마늘 다지는 기계를 사용해서 생마늘을 첨가해 본다. 알싸한 마늘과 느끼한 돈코츠 국물이 참 잘 어울린다. 마늘이 들어가면 또 색다른 맛을 선사해 준다.
차슈, 키쿠라케 (목이버섯)과 면을 집어 들고 한 입하기 전에 한 컷 찍어본다. 솔직히 말하면 사진 찍고 할 틈이 없다. 맛있는 라멘 맛보기 바쁘다.
하트를 발견! 귀엽다.
이쯤 되면 늘 고민이 된다. 사리를 추가할까? 하지 말까?
아껴두었던 맛계란을 갈라보면 이렇다. 제대로 된 레시피로 제대로 만든 맛계란이다. 입안에 호로록 넣으면 그 고소함이 입안 전체를 지배한다. 간혹 잘못 만든 맛계란을 맛볼 때 날계란 특유의 비린맛이 확 올라오는 경우가 있는데 사사야키의 맛계란을 맛볼 때는 그런 걱정은 잠시 접어두면 된다.
양이 줄어드는 것이 아쉽다. 1시간을 달려왔는데 조금 더 그 맛에 대해 즐기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잠시 고개를 들어 벽에 그려진 한 폭의 그림도 감상한다. 아직은 추운 겨울이지만 잠시 후 봄에 피어날 꽃을 기대하며.
거의 마지막 젓가락질이라 참 아쉽다.
깔끔하게 그릇을 비웠다. 이곳 사사야키에서 그릇을 비우는 행위는 오로지 맛이라는 기준에 입각하여 철저하게 맛있는 음식에 대해 본능적으로 대응한 결과물이다. 이것이 미식이다. 정말 맛있게 잘 먹었다.
정리하면,
입맛에는 정답이 없고 점수를 매길 수도 없다. 모두가 맛있다고 해도 단 한 사람의 개인적인 입맛 기준으로 맛이 없다면 그 당사자에게는 맛이 없는 것이다. 일본식 라멘이라는 음식이 참 그렇다. 다양한 입맛을 존중해 줘야 한다.
라멘에 관심이 있다면 제대로 만드는 집에서 맛보기를 바란다. 짠 것을 싫어하거나 라멘 초심자의 경우는 염도가 조절되는 집에서는 염도를 조절해 가면서 맛보는 것을 추천한다. 그렇게 시작하면 된다.
부산에서 일본 현지 스타일로 잘하는 곳이 몇 군데 있다.
사사야키 (돈코츠),
나가하마 만게츠 (돈코츠),
쿠지라멘 (쇼유, 시오)
류센소 본점 (돈코츠),
가솔린앤로지스 (돈코츠, 츠케멘),
마츠도 (미소),
칸다소바 (마제소바),
복동이네오지상 (니보시 시오, 니보시 쇼유),
마루니 (니보시)
생각나는 건 이 정도이다. 물론 이곳들도 맛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 곳이 있다. 참 신기한 게 왜 원도심에는 라멘을 잘하는 곳이 단 한곳도 없을까? 하나 생기면 떼돈 벌건데 말이다.
혹시 저곳들 외에 부산에서 일본식 라멘에 대해 잘 해석하고 있는 식당이 있다면 추천 부탁드린다. 오늘 소개한 이 집의 돈코츠 라멘 역시 일본 현지의 짜디짠 염도의 그것보다는 조금 더 한국 사람 입맛에 맞게 덜 짜게 개량하고 또 개량한 라멘이다.
하지만 이곳 사사야키는 돈코츠 라멘이라는 음식의 본질에 대해서는 잘 이해하고 잘 해석하는 라멘집이다. 돈코츠 라멘의 기본 틀을 잘 유지하며 이 집만의 독창성을 만들어내는 노력을 한다. 그런데 참 맛있다. 이런 곳이야말로 진짜 라멘 맛집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래서 이 집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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