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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초량 윤흥신 장군 석상 쌈지공원 (부산 동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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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구 sns 서포터즈 활동을 하면서 참 좋은 점이 하나 있다. 동구를 구석구석 살펴보게 된다는 점이다. 동구에 어떤 역사가 숨 쉬고 어떤 맛집이 있고 어떤 문화가 있는지에 대해서 눈여겨보게 된다. 나는 동구 주민이지만 그동안 잘 몰랐던 동구의 이야기를 서포터즈 활동을 통해서 제대로 더 잘 알게 되어 참 고맙고 즐겁다. 오늘은 그동안 바쁘게 스쳐 지나갔던 동구의 의미 있는 사적인 윤흥신 장군 석상 쌈지공원을 한번 찾아가 보기로 한다.

윤흥신 장군 석상 쌈지공원

동구 중앙대로 333 (초량동 1170)

주말 오후 동구 관내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걸어본다. 동구 내에 있는 식당에서 이바구페이로 결제하고 시원한 커피도 한잔 이바구페이로 구입해 보았다. 수정동 골목골목을 걸으면서 평화로운 동구의 일상을 느끼며 대로로 나와보았다. 중앙대로 옆으로 나있는 인도를 걷다 보니 보도블록이 잘 정비되어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요즘 동구에 돌아다니다 보면 보행자의 보행환경 향상을 위해서 열심히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동구청 참 열심히 일하는 것 같다.

큰걸음 동구 BIG WALK DONG GU 동구를 정말 잘 나타내는 동구의 새로운 도시 스타일 브랜드이다. 진취적인 발전과 세계로 진출하는 세련된 글로벌 도시 이미지를 추구하며 활기차고 건강하며 역동적인 동구를 보여준다. 원도심의 역사적 발자취와 북항 개발로 동구의 힘찬 도약을 의미하며 구민들의 활동적인 삶과 복지를 위하여 나아가는 발걸음을 나타낸다. 여러 도시의 브랜드를 지켜보았지만 이번에 바뀐 동구의 도시 스타일 브랜드는 정말 잘 만든 것 같다.

길 건너 보이는 건물은 옛 부산진역 역사이다. 부산진역은 1905년에 개업하여 경부선, 경전선, 동해남부선 열차의 필수 정차역으로 부산역에 버금가는 중요한 역할을 한 역이다. 그리고 비둘기호가 부산진역에서 시착, 종착을 했었다. 이제는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공사가 시작되고 있다. 앞으로 기대되는 공간이다.

부산일보를 지나서 부산역방향으로 좀 걷다 보면 고관 입구가 나온다. 오늘 가볼 윤흥신 장군 석상 쌈지공원이 바로 이곳이다. 아마 중앙대로를 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많이 봤을 법한 공간이다. 어떤 이야기가 담긴 공원인지 차근차근 살펴보도록 하자.

공원 입구에는 등나무 벤치가 있어서 지나가는 시민들의 쉼터가 된다.

이곳은 아주 오래전 두모포왜관이 있던 곳이다. 두모포왜관에 대해 잠시 살펴보자.

두모포왜관(豆毛浦倭館) 터

이곳은 두모포왜관이 있었던 곳이다. 왜관은 일본사절과 상인이 외교와 무역을 하였던 곳으로, 조선은 포구를 지정하여 일본인들의 거주와 상행위를 허용하였다. 조선시대 초기에는 제포(薺浦, 현 진해), 부산포(富山浦, 현 부산), 염포(鹽浦, 현 울산) 세 곳에 왜관을 두고 허가 없이 일본인과 조선인이 자유롭게 출입하는 것을 통제하였다. 임진왜란 이후인 1607년에는 부산포 한 곳에만 왜관을 지어 외교와 무역을 허락하였는데 이때 만들어진 것이 두모포왜관이다. 두모포왜관은 현재 동구 수정시장을 중심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왜관의 동쪽은 바다에 접해있고, 서,남,북쪽은 담을 쌓았으며, 왜관 동문 밖에는 좌천(佐川)이 흐르고 있었다. 지금도 두모포왜관이 있었던 주변을 고관(古館) 또는 구관(舊館)이라고 부르는데 이 이름은 1678년에 신축한 초량왜관을 신관(新館)이라고 부른데서 유래한다. 두모포왜관은 일본측이 대형 무역선이 정박하기에 부적합하다고 이전을 요구함으로써 70여년간 존속하다가 1678년에 초량왜관(현 용두산공원 주변)이 개관하면서 폐쇄되었다.

이 주변을 고관이라고 부르고 이곳 입구를 고관 입구라고 부르는 것이 참 궁금했었는데 그 궁금증이 해결되었다.

그리고 공원 광장을 바라보면 중앙에 부산 앞바다 쪽을 바라보고 있는 멋진 동상이 보인다.

공원 주변은 담이나 경계가 따로 없어서 지나가는 시민들이 언제나 휴식을 취할 수 있고 걸을 수 있는 힐링 공간이다. 잘 정비된 모습이 참 인상적이다. 동구 관내를 돌아보면 어딜 가나 누구나 접근하기 쉽게 잘 조성되어 있는 공원 등을 볼 수 있다.

동상의 한 쪽 면에 건립문이 새겨져 있다. 읽기 쉽게 글을 하나하나 옮겨보았다.

다대포진 첨절제사 윤흥신 장군 사적기 (건립문)

공은 장경왕후의 오빠 되시는 좌찬성 윤임의 아들로 을사사화 때 아버지와 두 형이 죽음을 당하고 가족과 재산도 몰수되었다가 1570년(선조 3년)과 1577년(선조 10년) 두 차례에 걸쳐 관직을 복구하고 재산을 찾고 남은 아들을 등용하도록 하니 공은 그 형제 중에 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공이 다대참사가 되기까지 어떻게 지냈는지는 잘 알 수 없다.

을사사화만 없었더라면 공은 왕실의 외척으로 권세를 누릴 사람이었다. 윤공의 전망사적은 충렬사지에 대강 나타나 있다. 즉 임진 4월 14일에 적의 일부 병력이 침투해와서 성을 포위하였으나 역전하여 이를 물리쳤다. 이튿날 적은 대부대를 거느리고 바다를 덮어 공격해왔다. 부하들은 피신하기를 청하였다. 그러나 공은 이를 물리치고 성과 운명을 같이하기로 결심하였다. 성문을 굳게 닫고 남은 부하들과 같이 물밀 듯 닥치는 적 앞에서 지주처럼 우뚝하게 성을 지키다가 시진도절하여 장렬한 전사를 하였다.

가문의 불행을 딛고 풍운이 급한 때를 당해 죽음의 땅으로 부임하여 충적한 적 앞에서 외로운 성을 끝까지 지키다가 의연히 죽음을 택하니 그 슬픔 비록 크다 하여도 그 절의 어둠 속에 한 가닥 빛을 남기니 거룩한 일이다. 비록 선무원종공신일등이 되었으나 변방의 일이라 그 사적이 오래드러나지 않았다. 영조 때에 와서 원임부제학 조엄이 전망사적서를 써서 충렬사에 합사할 것을 건의하고 동래부사 강필리는 사절기를 적어 또한 참사를 강조하니 1772년(영조 48년) 예조의 품의를 거쳐 합사하였다. 그 뒤로는 충렬사와 윤공단에서 해마다 제사를 모셨는데 근자에 부산시는 다시 관내의 선열유적을 점화하고 송공 정공 윤공의 동상과 석상을 세우게 되니 이에 공의 사적을 석상에 부쳐 추모의 뜻을 표하는 바이다.

1981년 9월 10일

이 글을 읽기 전에는 사실 윤흥신 장군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다. 동래 충렬사와 다대포 윤공단에서 매년 제사를 모시고 있다고 한다. 참고로 송상현 장군을 기리는 송공단은 동래, 정발 장군을 기리는 정공단은 좌천동, 윤흥신 장군을 기리는 윤공단은 다대동에 위치해 있다. 모두 임진왜란 때 부산을 지키신 분들을 기리는 곳이니 근처를 지난다면 한번 들러볼만하다.

마침 가을 하늘이 참 높고 맑은 날이라 사진이 멋지게 나왔다. 윤흥신 장군의 동상의 위용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다대첨사 윤흥신 장군상이다. 장군의 양옆에는 그를 따르던 군사와 일반 시민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동상 뒤로는 넓은 광장이 펼쳐진다. 점심시간 때 지나가보면 근처 직장인들이 산책을 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나무 그늘 아래에 벤치도 만들어 놓아서 햇볕을 피해 잠시 쉬어가기도 참 좋다.

근처 메리츠 빌딩과 이어지는 산책로이다. 양옆으로 화단이 조성되어 있어서 도심 속에서 작은 자연을 만끽할 수 있다.

공원 끝에는 정자 아래에 벤치와 나무 그늘 밑 벤치가 놓여 있다. 이곳은 주민들이 담소를 나누는 인기 있는 공간이다.

쌈지공원을 벗어나서 옆으로 보면 바로 중앙대로가 이어진다. 요즘 한창 간선급행버스체계(BRT, Bus Rapid Transit) 서면 ~ 충무동 구간의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BRT에 대해서 잠깐 설명해보자면 BRT는 버스 운행에 철도 시스템의 특장점을 도입하여 통행속도, 정시성, 수송능력 등 버스 서비스를 도시철도 수준으로 대폭 향상시킨 대중교통 시스템이다. 완공되면 버스 등 대중교통 이용이 훨씬 편리해질 것으로 보인다.

고관 입구의 윤흥신 장군 석상 쌈지공원에 대해서 소개해 보았다. 오늘 찾아가서 유심히 살펴보기 전에는 그냥 작은 공원이구나 생각했는데 직접 공원을 이곳저곳 둘러보니 역사적으로 상당히 중요한 곳이고 의미가 있는 공원임을 알게 되었다. 임진왜란 때 수많은 숭고한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지 않나 돌아보게 된다. 동구에 관심을 가지고 둘러보니 이런 의미 있는 장소를 또 알게 된 것 같다. 근처를 지나갈 일이 있다면 천천히 둘러보기를 추천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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