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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업

한국경마 100주년 기획 - 3. 경마 핫플레이스, 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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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마 100주년 기획, 벌써 3번째 시간이다. 일주일의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2편에 이어 3편 역시 지루하지 않은, 누가 읽어도 재미있는 경마 이야기로 써보려고 한다. 한국 경마 100년의 역사에 있어서 부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꽤 큰데 과연 어떤 이야기가 숨어있는지 같이 한번 떠나가보자.

평일 오후, 일을 빨리 마무리하고 차를 몰고 달려왔다. 부산시민공원 지하주차장으로 향하기 위해 U턴을 하고서 잠시 신호를 기다려본다. 한국경마 100주년 기획 글인데 왜 갑자기 부산시민공원을? 눈치 빠른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곳은 부산 경마의 역사가 살아 숨 쉬고 있는 곳이다. 너무 궁금해진다.

주차를 하고 남문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어본다. 부산시민공원에서 경마 이야기를 찾아보기 위해 30도에 육박하는 6월의 이른 더위와 싸울 준비가 되어 있다. 싱그럽게 피어있는 꽃들이 오늘따라 유난히 예쁘다.

방문자센터에 들러 공원 소개 안내 리플릿을 하나 손에 들고 넓은 공원을 둘러보기 시작한다. 6월의 태양은 늦은 오후가 되어도 따갑다. 그 와중에 여유롭게 산책을 즐기고 있는 시민들의 모습에 나 역시 마음이 편안해진다. 시대별 역사가 잘 전시되어 있을 것 같은 공원역사관으로 향한다.

가는 길목에 희망부산 100년 타임캡슐공원을 만난다. 아마도 부산시민공원이 정식 개장한 2014년 즈음 조성한 것 같다. 지난 100년의 역사가 궁금해서 찾아온 오늘의 나, 그리고 100년 뒤 2114년쯤 다시 재조명될 타임캡슐공원의 미래를 생각하니 어딘가 모르게 가슴이 웅장해지는 느낌을 받게 된다.

부산시민공원은 부산의 중심 번화가에 크고 아름다운 공원으로 자리하고 있어서 부산의 센트럴 파크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조경 수준이 상당히 높은데 이 공원의 조경 설계자는 조경 설계로 상당히 유명한 제임스 코너이다. 뉴욕의 고가 철도선로를 철거하고 그 자리에 만든 하이라인공원 (The High Line)이 그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서울로 7017 역시 하이라인을 벤치마킹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부산시민공원 역사관은 미군이 주둔하던 시절의 캠프 하야리아 장교클럽의 건물을 그대로 보존하고 새로 증축하여 이어놓은 건물이다. 부산광역시 근대건조물 2013-3호로 지정되어 있기도 하다. 이렇듯 미군이 사용하던 건물을 일부 보존하여 역사적 기록으로 남겨 놓았다.

역사관 전시실 안내를 살펴보면 2. 일제강점기 섹션이 있는데 이곳에서 부산 경마의 이야기를 자세히 엿볼 수 있다. 물론 처음부터 끝까지 천천히 둘러볼 생각이다.

현 부산시민공원의 부지 일대를 그려놓았다. 이곳에 경마장이 생기기 전인 19세기 말의 풍경이라고 보면 되겠다. 넓은 땅에 비옥한 농지가 많아서 한적한 마을에 농민들이 농사를 짓고 살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서면경마장이 생긴 후의 모습이다. 왼쪽에 동그랗게 타원형으로 그려진 부분이 경마장이다.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자.

출처 : 부산시청

1950년 대 하야리아 부대 항공사진을 가지고 왔다. 이곳에는 총 3개의 경마장이 있었다고 한다. 제1 서면경마장은 1930년, 제2 서면경마장은 광복 이후, 제3 서면경마장은 6.25 전쟁 이후에 생긴 것이다.

 

사진에서 보다시피 공원역사관에서 다양한 경마의 흔적들을 찾아볼 수 있다. 참 반가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1919년 3.1 운동을 기점으로 일본은 무단통치에서 문화통치로 방식을 바꾸면서 경마가 자연스레 대중오락의 한 부분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예전에 한국사 능력검정 심화 자격증을 취득하면서 특히 일제강점기 공부를 많이 했는데 그때 공부한 일제강점기의 역사가 경마와도 필연적인 관련이 있다는 것이 참 신기하고 재미있다.

제1 서면경마장이 1930년에 문을 열었고 그 해 가을 추계 경마가 열렸는데 이때 마권 발매, 매상 기록이 전국에서 서울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1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렇지만 과거의 부산 경마장은 전국 9개 공인 경마장 중 서울을 제외하고 가장 큰 관람 인파를 끌어모은 명실상부한 경마 도시였다.

서면경마장의 주로 길이는 겨우 1,000m밖에 되지 않았다. 군산, 대구 등 다른 지역의 공인 경마장이 1,600m의 주로를 갖추고 있었던 것에 비해 턱없이 짧은 거리이다. 1937~1940년 증개축 공사로도 경주로가 1,200m로 확장된 데 그쳤다. 그렇게 부족한 환경에서 많은 관람인원과 매출을 기록했던 것이다.

전시된 자료를 보면, 서면경마장 이전에 부산진 매축지, 동래 온천장 입구, 조방 앞, 연산동 등 다양한 장소에서 경마가 개최된 것을 알 수 있다. 대부분 근천에 하천이나 연못이 있고 철도역과도 비교적 가까운 곳이다. 그래서 당연히 사람들이 많이 모일 수 있었을 것이다.

1928년 춘계 경마개최 신문기사

출처 : 부산시청

다른 지역에 비해 광복 전 부산경마장에 대한 기사가 비교적 많이 남아있는데 이는 당시 부산일보사 사장 아쿠타가와 마사시가 부산경마구락부 조직을 주도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위 신문기사는 1928년 5월 8일 자 기사인데 부산진 매축지 경마장에 구름처럼 몰려든 인파와 경주 사진이 보인다.

다양한 경마 광고들이 눈에 들어온다. 당시 시민들에게 경마의 인기가 상당히 많았음을 알 수 있다.

서면 경마장은 일본인 자본가의 투자로 준공되었는데 당시 신흥지역인 부산부와 구 상권인 동래의 중간 지역에 위치하여 상호 교통이 편리하다는 점과 일본인 자본가들이 미리 부지를 확보한 상태였다는 점에서 순조롭게 건립되었으며 이를 통해 일본인들이 주로 거주하던 부산부 영역의 확장 효과도 거둘 수 있었다.

한편 서면경마장의 운영은 단순히 식민도시의 확장과 마권판매 수익에만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일본은 경마장을 통해 조선총독부의 세수를 확보하고 전시에 대비한 군마훈련 및 군사기지화 작업도 염두에 둔 것이었다. 돌아보면 참 가슴 아픈 역사가 아닐 수 없다.

쇼와 3년 춘계

우승

부산부 경마구락부라고 적혀 있다.

히로히토 일왕의 재위기간 (1926 ~ 1989년)을 쇼와시대라 부르는데, 쇼와 3년 춘계니까 1929년 봄 경마 우승기가 아닌가 추측해 본다.

역사관을 관람하며 부산시민공원 발자취 스탬프 투어도 함께 해보았다. 이곳은 경마의 역사를 넘어 지난 100년간 부산시민의 애환이 많은 곳이다.

공원 역사관을 나와 눈에 보이는 풍경을 찍어본다. 도심 한가운데 이렇게 멋진 힐링의 공간이 있다는 것이 참 좋다.

비둘기가 쳐다보길래 잠깐 눈싸움도 해본다.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공원에서 즐기는 여유는 참 의미 있다.

길 한편에 잘 자라고 있는 해바라기를 바라본다. 초록의 싱그러움과 해바라기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니 자연스레 여름 한가운데로 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부산시민공원 역사 스토리텔링 조형 작품이다. 부산시민공원이 과거 부산 서면경마장으로 운영되었던 장소성과 역사라는 가치를 더하는 스토리텔링 작품으로, 경마장 상징물 '말' 형상을 동시대 시민공원과 어울리는 현대적이고 미니멀한 목조형 작품으로 재해석하여 전시하고 있다. 이렇게라도 경마장의 역사가 기억되고 있는 부분이 참 반갑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였는데 그 당시 서면경마장의 일제의 계략대로 일본군 기마부대를 위한 장소로 활용되기도 한다. 시간이 흘러 1940년대 초, 태평양전쟁으로 일본의 군용 마필 수요가 급증했고 통제의 효율성을 위해 전국의 경마가 제한되거나 중단되었다. 이 시기 서면경마장은 병참경비대를 위한 장소, 그리고 연합군 포로 관리를 위한 임시군속훈련소로 사용된다.

1945년 광복 이후, 모두가 광복의 기쁨을 경마로 즐겼다. 하지만 곧이어 미군이 부산에 주둔하면서 제1 서면경마장과 제2 서면경마장은 하야리아 캠프로 불리는 주한미군기지로 탈바꿈한다. 이렇듯 이곳 부산시민공원은 수난의 역사가 혼재된 가슴 아픈 장소이기도 하다. 앞서 말한 대로 하야리아 캠프 시절의 건물들이 곳곳에 남아있다. 그 흔적을 통해 역사를 돌아볼 수 있다.

공원을 걷다 보면 말굽거리 (경마트랙)라는 입간판을 만날 수 있다.

공원 설계 당시 시설명은 '경마트랙'으로 트랙 전부를 보존하고자 하였으나 공원 조성계획으로 인해 일부 선형이 단절된 부분이 불가피하게 발생하였다. 그러나 경마트랙의 전체적인 형태와 느낌을 살리고자 '황토포장'으로 시공하여 최대한 원형에 가까운 분위기를 연출하였으며 이 공간이 100년 만에 부산 시민의 품으로 돌아온 것을 기념하여 '말굽거리'라 이름을 지었으며 시민 정서에 맞는 새로운 거리문화 창출과 역사의 장으로 기억되는 장소가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라고 안내되어 있다.

1930년대 서면경마장의 모습

출처 : 부산시청

1930년대 서면경마장은 말 그대로 시민들이 제대로 즐기는 즐거움이 가득한 공간이었을 것이다. 즐길 거리가 부족하던 그 시절, 경마는 아마도 최고의 오락이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말굽거리에 서서 저 멀리 바라보았다. 그 옛날 서면경마장에 구름같이 모여서 경마를 즐기던 시민들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가만히 눈을 감고 귀 기울여본다. 100년 전 그 환호와 함성이 어렴풋이 들리는 것 같다.

부산 경마구락부의 모습

출처 : 부산시청

구락부는 클럽 (club)의 일본식 발음이다. 부산 경마클럽의 단체사진은 시간이 지나도 참 멋지다. 드넓은 평지에서 마음껏 경마를 즐겼을 생각을 하니 부럽기도 하고 말이다.

그 옛날 말들이 열심히 뛰어다녔을 법한 공간이 지금은 이렇게 멋진 공원으로 탈바꿈하였다. 도심 속 힐링의 공간, 최고다.

공원을 거닐다가 제 3서면경마장의 흔적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부산시민공원 남문에서 길을 건너면 넓은 외부 주차장이 보이고 그 뒤로 보이는 저곳이 제3 서면경마장 터이다.

다소 오르막이 있어서 땀은 한증막에 들어갔을 때처럼 비 오듯 흐르지만 취재에 대한 열정을 이기지는 못했다. 수십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경마탕, 경마식당 등 경마장의 이름이 남아있는 모습이 참 반갑다.

이 동네에 거의 15년 만에 왔다. 예전에 자주 왔었다. 친한 친구가 다소 일찍 결혼을 하여 신접살림을 차린 집이 바로 이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자세하게 기억이 안 나지만 그 당시 택시를 타면 경마장 가는 길? 경마장길?로 가자고 하던 친구의 모습이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신기했던 기억이다.

지금 내가 서있는 '경마장로'는 제3 서면경마장의 흔적이다.

6.25 전쟁이 발발하고 1953년까지 약 4년간 경마는 긴 휴면기에 접어든다. 부산에서는 1956년 경마가 재개되었는데 하야리아 부대 동쪽 골짜기를 깎아 360m의 미니 트랙을 설치하고 경마를 다시 진행했다. 이곳이 바로 제3 서면경마장이다. 전쟁 후 열악한 환경이기에 모든 것을 약식으로 진행했으나, 부산 사람들의 경마에 대한 열정만큼은 고스란히 녹아들어있다.

말을 위해 골짜기를 깎아 주로를 만들었던 부산 사람들의 열정이 그대로 묻어있는 제3 서면경마장 일대는 조만간 재개발로 다 정리가 될 모양이다. 머지않아 다른 지방경마장들처럼 이곳도 옛 지도 속에서나 그 흔적을 찾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던 곳이라 그 아쉬움이 크다.

 

 

 

정말 더운 여름날의 오후라 비 오듯 흐르는 땀을 잠깐 식히고자 길 옆에서 붙어있는 어느 빈집 옥상 주차장에 잠시 서보았다. 그리고 영상도 찍어보았다. 바라보는 풍경과 어울리는 곡을 찾아 편집해 보았다. 보고 듣고 있으니 힐링이 된다.

2022년에 바라보는 풍경은 참 아름답고 여유롭다. 오래된 집들과 탁 트인 공원, 저 멀리 높은 건물들을 바라보니 자연스레 과거의 모습이 궁금해지는 것은 기분 탓일까? 전쟁이 끝나고 미니트랙을 만들어서 경마를 즐기던 그 시절의 부산 시민들도 이 풍경을 보고 감동했을까? 여러 가지 궁금증이 든다.

제3 서면경마장 터를 이리저리 살펴보고 내려가는 길에 부동산이 눈에 들어온다. 부동산 앞에 붙어있는 화려한 재개발 조감도를 바라보며 문득 100 여년 전 서면경마장을 찾아 환호와 탄성을 보냈을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앞으로 이곳이 어떤 모습으로 바뀔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어쨌든 이곳은 서면경마장이 있던 곳으로 영원히 기억되겠지.

100년 전 서면경마장이 있던 이곳은 100년이 지난 후 도심 속 힐링 공간이 되었다. 세월이 흘렀지만, 이유는 각기 다르지만 부산 시민이 늘 찾았던 이곳은 시대를 넘어 여전히 핫플레이스임이 분명하다. 앞으로 100년 후에는 어떤 모습일까?

한국경마 100년을 기념하는 기획 3편에서는 지난 100년의 한국경마 핫플레이스, 부산의 이야기를 살펴보았다. 바쁜 일상의 시간을 쪼개어 부산경마 역사의 흔적을 찾아떠나는 작은 여행은 기대 이상으로 재미있고 보람이 있었다. 연도별 딱딱한 사실들을 나열하는 것이 아닌, 누가 읽어도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글을 쓰려고 노력했는데 내 의도가 이 글에 제대로 반영이 되었는지 궁금하다.

 

https://kidm.tistory.com/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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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마 100주년 기획 1, 2편 글의 링크를 남겨본다. 함께 읽어보면 재미있을 것이다.

평소 역사 공부를 좋아하다 보니 이번 취재 역시 상당히 재미있었다. 일제강점기 이후부터 지금까지 역사의 흐름을 따라 살펴보니 경마와 역사가 꽤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독자에게 잘 전달되기를 바라며 글을 마무리한다.

4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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