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하다

이중섭거리

반응형

8월부터 부산 동구 sns 서포터즈인, BDS 판플레이어 3기로 활동을 이어간다. 2기 활동을 너무 즐겁게 해서 3기도 하고 싶었는데 다행히 이번에도 합격을 해서 활동하게 되었다. 첫 포스팅을 무엇으로 할까 고민하다가 동구의 의미 있는 거리를 한번 찾아가 보았다.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동 1461-144

출발은 옛 교통부, 보림극장가 있던 범곡 교차로에서 시작한다. 범일 골목시장을 시작으로 안창마을까지 이어지는 호랭이 이바구길로 걸어가 본다.

걷다 보니 누나의 길이라고 보인다. 이 동네는 우리가 조방앞이라고 말하는 조선방직 공장이 있던 그곳에서 열심히 일하던 여공들의 애환이 담겨있는 곳이다.

시장을 따라 올라가면 얼마 후 이런 갈림길이 나타나는데 왼쪽에 이정표가 보인다.

이중섭거리를 알리는 이정표이다. 이 길을 따라가면 희망 100계단과 이중섭 전망대로 향할 수 있다.

이중섭 문화거리 ㅈㅜㅇ서ㅂ 이라고 잘 꾸며진 계단의 입구이다. ㅈㅜㅇ서ㅂ은 화가의 사인이다.

희망길 100계단을 시작으로 천천히 걸어가 보자. 계단의 한 면에는 젊은 이중섭의 모습과 나이 든 이중섭의 모습이 양쪽에 입체적으로 잘 표현되어 있다.

환하게 웃고 있는 이중섭 화가의 모습이다.

이중섭 1916 ~ 1956, 한국 근대 서양화의 대표적인 화가이다. 주요 작품으로는 서귀포의 환상 1951, 물고기와 노는 세 어린이 1953, 황소 1954, 달과 까마귀 1954 등이 있다.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작품은 황소가 있다.

계단의 양옆 난간에는 그의 작품이 하나씩 전시되어 있다. 한 작품씩 감상하면서 오르다 보면 힐링이 된다.

중간쯤 나타나는 휴식 공간이다. 흰소라는 작품이 동상으로 제작되어 전시되어 있다.

이중섭은 소의 화가라고 불릴 만큼 소를 소재로 한 그림을 많이 그렸다. 그중 흰소는 이중섭 화가의 자화상을 나타내며 우리 한민족의 표상으로 재해석되기도 한다. 의미 있는 작품이다.

계단 옆에 이렇게 나있는 공간이다. 조금 바람이 불던 날이라 그런지 동네 주민분들이 담소를 나누고 계신다. 한쪽 벽에는 이중섭에 관한 일화 등이 적혀있다. 휴식을 취하면서 하나하나 읽어보니 재미있다.

멋지게 잘 꾸며놓았다. 동구의 곳곳을 돌아다녀 보면 느끼지만 작은 공간이라도 정말 정성을 들여서 잘 꾸며놓고 정비하고 관리하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다. 큰걸음 동구답다.

이중섭 (1916 ~ 1956)

이중섭은 1916년 평안남도 평원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미술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던 그는 오산학교 재학 시절 미술담당교사 임용련을 만나게 된다. 이중섭은 그의 영향을 받아 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1937년 일본으로 유학을 간 이중섭은 마사코(이남덕)를 만나고, 1944년 이중섭이 귀국한 후 1945년 마사코가 현해탄을 건너와 원산에서 백년가약을 맺는다. 이듬해 이중섭은 원산사범학교의 미술 교사가 된다.

한국전쟁 발발 후 1.4후퇴 때 이중섭은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부산으로 내려온다. 우암동 피란민 수용소에서 살며 부두 노동을 하던 그는 1951년 가족과 함께 제주도로 건너갔다. 그해 12월 다시 부산으로 돌아와 범일동 귀환동포 마을 변전소 근처에 판잣집을 짓고 생활했다. 이중섭과 가족들은 비가 새는 허름하기 짝이 없는 판잣집에서 하루하루 고단하게 살아갔음에도, 훗날 마사코는 "범일동 1497번지의 판잣집에 거주했을 때가 정말 행복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계단 양옆에 꾸며진 이중섭 난간 갤러리이다.

'당신의 편지가 늦어지는 걸로 보아 혹시 당신이나 아이들이 감기로 눕지나 않았는지요?' 이중섭이 일본에 있던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 내용의 일부이다.

'봄의 아동'이라는 작품이다. 종이에 연필로 그리고 유채화로 마무리한 작품이다.

쉬어가는 의자에도 센스가 돋보인다.

한쪽 벽에 이중섭의 작품 '부부'가 조형물로 재해석되어 있다.

나의 소중하고 사랑하는 아내여...

...자신이 사랑하는, 소중한 아내를 진심으로

모든 걸 바쳐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은 결코 훌륭한 일을 할 수 없소

-이중섭 마사코 편지 중-

환희에 차고 행복한 모습의 두 마리 닭이 부부의 만남과 사랑을 나타내고 있다.

신혼시절 집에 닭장이 있었는데 그 신혼시절을 생각하면서 이중섭 자신과 마사코의 행복한 모습을 닭에 비유하여 그린 그림이라고 한다. 작품을 보고 있으니 애틋함이 느껴진다.

담뱃갑 안쪽에 싸여있는 은박지에 그림을 그린 은지화라는 이유로 철거되고 그림값을 떼이기도 했다는 일화를 들으니 마음이 아팠다.

뉴욕으로 간 은종이 그림 세 점이 독창성을 인정받고 동양인 화가 최초로 세계적 화가로 승인받는 계기가 되었다. 화가 생전에 인정을 받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해 본다.

'복사꽃이 핀 마을'이라는 작품이다. 이중섭이 친구의 호의로 통영에서 잠시 머물 때 심리적 안정으로 시원하게 그려낸 풍경화로 평가받고 있다.

계단의 끝이 보인다. 마치 계단 벽에서 튀어나올 것 같은 소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중섭, 추억하다. 다양한 작품들과 이야기가 있는 거리라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글과 그의 작품 '판잣집 화실'이 그려져 있다.

이중섭이 살았던 그 판잣집이다.

가족과 떨어진 외로움과 고독이 참 많이 느껴지는 편지글이다.

계단 끄트머리에는 제주도 서귀포에 머물던 시절 자주 그렸던 아이들과 물고기의 그림이 보인다.

계단을 다 올라왔다.

계단의 끝에는 이중섭 전망대가 자리 잡고 있다. 드라마 쌈 마이웨이에서도 잠깐 나왔던 곳이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경이다.

사진 중간의 지붕이 온전치 않은 집이 이중섭이 살던 집이다.

전망대에서 보이는 안창마을 쪽 모습이다. 호랭이 이바구길로 이어지는 동네이며 오리고기로 유명하다.

전망대에는 작은 카페가 있다. 현재는 코로나19로 인해 운영을 하지 않아 보이던데 시원한 커피 한잔 사서 전망대에서 전망을 감상하면 참 좋을 것 같다.

길을 건너서 이중섭 전망대를 찍어보았다. 더운 날씨였지만 바람이 불어서 나름 즐겁게 걸어올라 왔다. 제주도 서귀포 시내에 가보면 이중섭거리가 있고 아주 인기가 많다. 이중섭이 제주도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낸 부산에도 이중섭 거리가 있고 풍경이 좋은 전망대가 있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다. 

이중섭의 어록 중에 유명한 말이 있다.

'예술은 진실의 힘이 비바람을 이긴 기록이다. 정말을 하고, 진실에 살지 않는다면 예술이 싹트지 않는다.'

그의 삶은 말 그대로 비바람을 이긴 기록이다.

좋아하는 화가의 다양한 작품들을 눈으로 접하면서 걸어온 오늘 이 길은 참 재미있고 여러 가지 여운을 남긴다. 이곳이 조금 더 많이 알려져서 동구의 유명한 관광지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반응형